2011/02/28 13:32

과속스캔들 감상잡화

  솔직히 싼티 철철 흐르는 제목 때문에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설정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광고도 그렇고 그냥 그저 그런 삼류 개그 영화겠거니, 하며 떨떠름하니 주변 반응을 보며 고갤 젓고 있었을 따름. 박보영은 들어본 적도 없고, 포스터엔 별로 매력있게 나오지도 않았고, 차태현은 "엽기적인 그녀" 이후에 줄줄이 말아 먹고 "복면 달호"로 간신히 체면치레한 참이라 배우에도 별로 눈길이 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뭐 어찌어찌 누가 영화를 보여 준대서 극장에 가 앉았는데… 예상과는 전혀 달랐달까. 지저분하지 않고, 막나가지 않고, 차분히 멱을 쥐고 완급을 조절한 괜찮은 코미디 영화였다. 차태현이야 뭐 늘상 범타는 치는 배우지만 황제인 역의 박보영이나 황기동 역의 왕석현은 간만에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해줬다. 특히 박보영, 누구는 원더걸스의 소희를 닮았다고 하던데 내가 보기엔 유빈을 닮았다. 마스크나 연기나 다 괜찮더라. 당분간 얘가 나온다고 하면 챙겨 볼 듯.

  영화를 보고 나와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 놈들 참 영리한데'였다. 기동이 아빠라고 뭔지 모를 사내놈이 하나 나오긴 한다마는,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남현수-황제인-황기동 세 사람의 영화다. 그리고 남현수-황제인의 관계는 역할만 따져보면 부녀지간보다는 부부지간에 가깝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남-황 관계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이게 참, 아슬아슬하다. 그냥 딸… 이라고 보기에는 좀 그렇단 말이다. 미묘하게 근친상간이라는 코드를 건드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 중간의 침대 개그도 그렇지만 황제인의 엄마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참 거식하다. 가족이라고 하면 부-모-자의 구성이다. 누구 하나가 죽어서 없어진 경우라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떻게든 언급되기 마련이다. 스캔들 공개를 위한 소품으로 쓰이긴 했지만 기동 아빠가 등장하는 것으로 제인과 기동이 완전한 가족관계를 이룬 것에 비해 남-황 관계에서 제인 엄마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적다. 아니, 없다. 극중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황우슬혜와 남현수의 관계가 잘 된다. 뭐 별다른 갈등 상황 같은 건 없이 그냥 잘 되는데, 제인은 여기에 전혀 반응을 안 보인다. 희한하지 않나. 아빠한테 그렇게 애정이 있는데 새엄마라고 자기랑 나이 몇 살 차이 안 나 보이는 여자랑 좋아지내는데 아무 반응 없다는 게. 

  솔직히 정말 별거 아닌, 싸구려 설정을 갖다 이렇게 괜찮은 영화를 만들어 낸 감독에게 박수를, 온갖 싸구려틱한 요소들을 죄 갖다 모았는데 결과물이 제법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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